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무(朴炳武)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7198
  • 전몰일자 : 19510506

공훈사항

박병무 일병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11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5사단 제27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 중에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 중인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후방지역에서 잔적 소탕을 하고 있다가, 1950년 12월 13일 춘천 북방의 전선에 투입되어 아군의 철수를 엄호했다. 이어 사단은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 준비를 했다.
사단은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1951년 2월 5일부터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하여 2월 9일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포동리를 점령했다. 사단은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2월 공세)을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부대를 정비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사단은 3월 3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월 7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지역의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에는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했다. 그리고 신대리-백운동을 잇는 선으로 진출한 후,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으로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4월 10일 공격을 개시하여 19일에 목표인 인제를 점령하고 그 북방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면서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때 제27연대는 사단 예비로 후방지역 경계를 담당했다.
사단은 4월 22일 자정부터 북한군의 집중 공격(공산군 4월 공세)을 받아 4월 24일 인제를 적에게 빼앗겼다가 4월 25일에 재탈환했다. 제27연대는 5월 초순 한석산 서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하는 공격작전을 준비했다. 박 일병은 공격 준비 중 5월 6일 적 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0판-4면-23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5-ㅊ-1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