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렬(박병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83582
  • 전몰일자 : 19510913

공훈사항

박병렬 하사는 1931년 5월 15일 강원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0년 12월 23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이어 제301공병교육대에서 공병 주특기 교육을 받은 후, 제1103야전공병단에 배치되었다.
제1103야전공병단은 북진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11월에 창설되어 제3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3군단은 1950년 10월 16일, 서울에서 신편된 제5사단(1950. 10. 8. 재창설, 대구)과 제11사단(1950. 8. 27. 창설, 영천)을 배속받아 창설되었다. 창설 후 군단은 서울-춘천-인제-양양 선 이남의 유엔군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공비토벌작전을 했다.
박 하사가 제1103야전공병단에 배치될 무렵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고, 제1103야전공병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군단의 후방지역에서 도로 및 교량 보수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3군단은 12월 중순 제2·5·8사단을 배속받아 최초로 가평-춘천 정면의 전선에 투입되었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3차 공세 때 군단은 영월로 철수했고, 이후 군단은 제3·7·9사단으로 영월전투, 홍천전투, 횡성전투를 수행했다. 그리고 제3·7사단으로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영월-평창-현리 축선으로 진격하여 4월 중순 화천저수지 남방의 한계리-가리산까지 진출한 후, 중공군 4월 공세를 매봉, 한석산 일대에서 격퇴했다.
제3군단은 중공군 5월 공세 때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중공군에게 차단된 가운데, 강원 인제군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하진부리 일대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1103공병단은 육군본부 직할로 전환되어 후방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공병단은 전쟁 기간 중 전투 병력의 신속한 기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도로와 교량 보수에 주력하면서, 때로는 직접 전투에 투입되어 적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박 하사는 공병 분대장으로서 분대원을 이끌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 작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1951년 9월 13일 강원도 화천 일대 주보급로 보수 임무를 수행하다 적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6-ㅈ-07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