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두(朴炳斗)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20849
  • 전몰일자 : 19521103

공훈사항

박병두 하사는 경상북도 금릉군(現 김천시) 어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2년 4월 15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2사단 17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두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2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美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인 FTC(Field Trainning Course)훈련을 실시하던 중이었다.
그 후 사단은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부로 美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하여 철원군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를 잇는 방어진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공산군은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전투력을 증강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따라서 유엔군사령부에서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부대에 공세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유엔사의 작전방침에 의거 공세행동으로 10월 14일부터 철원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진지 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했다. 박병두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 공격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바로 그 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여 저격능선 일대에서는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격전이 매일 벌어지게 되었다.
제2사단은 제17, 32연대에서 1개 대대가 저격능선에 대해 교대로 공격했다. 그러던 중 11월 12일에 저격능선을 적에게 빼앗겼고, 제17연대는 11월 14일에 빼앗겼던 저격능선을 다시 탈취하기 위해 강력한 유엔군의 항공 및 포병화력을 지원받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 전투에서 박병두 하사는 용맹하게 싸워 저격능선을 탈취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나,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특별시 삼청동에 위치한 육군직할 제36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이 악화되어 11월 3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두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1묘역-판-2534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ㄷ-01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