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도(朴炳道)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9569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박병도 중위는 1928년 3월 12일 부산시 영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50년 7월 16에 시흥의 보병학교에 갑종간부후보생 제2기로 입교하여 교육받고 후보생 대대로 편성되어 김포지구에 출동하였다. 이후 지연전과 낙동강방어선전투까지 치룬 후에 9월 1일부로 육군종합학교 제1기로 입교하여 2주간의 교육을 마친 다음 9월 17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제6사단은 9월 16일을 기해 개시된 총반격작전에 참가하였다. 북한군은 처음에 인천상륙작전으로 후방이 차단된 것도 모르고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9월 21일이 되자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을 추격하여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10월 5일에는 38선을 돌파하고, 26일에는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하였다.
반면 중공군은 은밀히 압록강을 도하여 적유령 산맥 일대에 숨어 있다가 10월 26일에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는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면서 대대적인 공격을 실시하였다. 제7연대는 27일부터 30일까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중공군의 대병력과 맞서며 철수를 실시하였다. 박병도 중위는 당시 험준한 산로를 따라 130km의 원거리를 소대원들을 인솔하여 청천강변의 개천으로 탈출하였다.
박병도 중위는 적 차단선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중공군과 용맹하게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제2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얼마 후 완쾌되어 복귀할 때에는 동래군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로 전속되어 훈련병을 양성하는 교관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당시 적 게릴라들에 의한 후방교란이 심하여 인근지역에 대한 공비소탕 작전에도 수시로 참가하였다.
12월에는 중공군의 공격에 보조를 맞춰 적 게릴라들의 주요시설 습격사건이 빈번히 발생하였으며, 12월 31일 중공군의 서울 총공세와 때를 같이 하여 적극적인 습격활동을 실시하였다. 박병도 중위는 1951년 2월 11일에 부산 인근의 동래군 구포 일대에서 적 게릴라(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에 출동하여 용감하게 진두지휘하여 적 게릴라를 격멸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전투 중 흉탄에 가슴을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도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5-ㅇ-043)에 그의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