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덕(朴炳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300647
  • 전몰일자 : 19500628

공훈사항

박병덕 이등중사는 1930년 9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1월 15일 제1여단 제11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8사단 제10연대로 전속되었다.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의 38도선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초 북한은 사단 후방에 유격대를 남파했다.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후방의 제21연대는 물론 전방의 제10연대에서도 병력 차출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제10연대는 일부 대대를 차출, 오대산과 계방산 일대에 투입하여 북한 유격대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이런 와중에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6월 25일 새벽 6시경, 북한군 제5사단 및 제38경비단 제1여단 3개 대대는 짙은 안갯속을 뚫고 38도선을 일제히 돌파하여 침공했다.
아군은 짙은 안개와 적의 양면 기습으로 적의 병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불리한 전투를 개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군 장병의 사기는 왕성하여 소수의 38도선 경비부대로도 압도적인 적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또한, 강릉비행장에 주둔 중인 사단 예비대 제10연대 제4중대는 옥계지구에 상륙한 적에 대항하여 강동으로 출발했다.
제10연대 장병들은 38도선에서 경계 작전에 임하던 중이었기에 곧바로 방어 전투에 돌입할 수 있었다. 제10연대 정면으로 북한군 제1경비여단 및 제5사단 제10연대가 공격을 가했다. 한편, 정동진 방면으로 북한군 제945육전대와 제766부대가 침투하여 제10연대에 대한 포위 및 제21연대의 증원 차단을 시도했다.
다행히도 제21연대가 정동진의 북한군 육전대를 격멸하고 북진하여 제8사단을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6·25전쟁 초기의 전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사단은 적의 공격을 차단하지 못하고 후방지역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 이등중사는 북한군의 압도적인 공격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6월 28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덕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31판-4면-2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ㅈ-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