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대(朴柄大)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4036
  • 전몰일자 : 19510612

공훈사항

박병대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1년 1월 초순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밀려 1·4후퇴를 단행하여 37도선에서 전력을 가다듬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1951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영주 남대리 부근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격멸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공격을 전개했고, 연대는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27일 경강국도 상의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연대는 5월 7일부터 13일까지 미주리선 진격전에 참가하여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박 일병은 6월 12일 설악산 일대에서 실시된 수색정찰작전 간 앞장서서 적을 찾다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1면-17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ㄷ-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