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기(박병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504525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박병기 이등중사는 부산광역시 서구 완월1가 30에서 1928년 1월 18일에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이등중사는 1950년 2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등중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1950년 4월까지 무장공비토벌 작전을 진행하고 강릉에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기습남침을 감행했고 당시 제8사단은 지연전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지역을 상실하고 후퇴하게 되었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북한군의 압도적인 전력에 지연전을 펼치면서 낙동강까지 후퇴하였다. 그 후 9월에는 반격을 개시하였고 10월에는 38도선을 돌파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제8사단은 적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었는데, 이때 청천강으로 철수하라는 요청에 제8사단은 영원방면까지 철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3일 맹산에 전방지휘소를 개설하고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에 돌입했다. 제8사단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병력이 계속해서 증강됨에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 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특히 제8사단의 피해가 컸다. 이 전투에서 박 이등중사는 1951년 2월 11일 강원도 횡성군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기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6면-279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ㄴ-08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