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기(朴炳忌)

  • 군별 : 해군
  • 계급 : 상병
  • 군번 : 8102731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병기 상병은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1947년 5월 15일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했다. 박 상병은 신병교육을 받고 1946년 8월 22일 창설된 묵호기지에 배치되었다.
해군은 1949년 6월 1일 진해특설기지를 진해통제부로 개편하는 한편 각 해군 기지도 해군경비부로 개편했다. 인천, 목포, 묵호 기지가 이날 경비부로 승격되었고, 부산과 포항, 군산 기지는 1950년 4월 15일 경비부로 승격되었다. 각 경비부는 육상과 해상으로 경비 책임구역을 담당했는데, 묵호경비부는 강원도 일대의 항만과 해상 경비 및 통제 임무를 수행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묵호경비부는 사령관 예하에 박 상병을 포함한 병력 195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은 남진을 가속화하기 위해 부산을 비롯한 동해안의 여러 지역에 동시 다발적인 상륙을 도모했다. 이러한 기도 아래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제945군부대 1,800여 명을 강원도 강릉군 옥계 해안과 그 북쪽 정동진, 금진에 상륙시켰다. 또한 제766유격대 1,300여명을 옥계 남쪽 삼척, 임원에 상륙시켰다. 이들의 임무는 강릉의 국군 제8사단의 배후를 교란하는 한편, 삼척 주둔 제8사단 제21연대의 강릉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한국 해군은 부산의 제2정대 소속 소해정 6척이 동해안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중 1척(YMS 509정)의 경비정으로 묵호와 주문진 간의 해상을 경비하고 있었다. 묵호경비부는 강릉으로부터 묵호에 이르는 해안에 해상감시초소를 설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6월 25일 새벽 4시경 동해상의 해로를 따라 남하한 북한군이 옥계 해안에 대한 상륙을 개시했다. 옥계 지역의 해안 초소로부터 적의 상륙을 보고받은 묵호경비부 사령관은 해군본부에 상황을 보고함과 동시에 묵호경비부와 YMS 509정의 출동을 명령했다.
25일 묵호경비부는 해군수색대를 편성하고 아침 7시경 옥계로 출동하여 경찰, 옥계청년단원들과 합세하여 상륙을 완료한 북한군과 교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전력의 열세에다 실탄까지 바닥남에 따라 저녁 9시경 묵호경비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상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6월 25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1-ㅍ-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