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규(朴炳圭)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77456
  • 전몰일자 : 19520318

공훈사항

박병규 하사는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기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세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2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박병규 하사가 전선에 투입될 무렵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지만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4월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후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 상의 영평을 확보하기 위해 문산 축선에 투입되었다.
박병규 하사와 연대병력은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10월 3일 이른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 준비 사격에 이어 오전 6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임진강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의 91고지와 146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12월 28부터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어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중이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두매리고지 일대에서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연대는 2월에 접어든 뒤에도 여전히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했으며 정찰과 기습을 통해 북한군과 계속 접촉을 유지하고 방어진지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계속되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고 격멸했다. 그러나 박병규 하사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을 맞아 중상을 입고 수도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952년 3월 18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0묘역-9판-10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ㅈ-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