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규(朴炳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506502
  • 전몰일자 : 19510829

공훈사항

박병규 일등중사는 1928년 2월 17일에 충청남도 아산군(現 아산시) 음봉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북한의 남침 우려가 커져 가는 가운데 1949년 7월 초순경 대전에 위치한 제2사단 제5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복무했다. 연대는 7월 10일 제3사단에서 제2사단으로 예속 변경되어 온양으로 이동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 위치하고 있던 제5연대(-)는 전투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의정부 북방 축석령으로 투입되었으나, 전투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적 전차에 의해 돌파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원들은 분산 철수하여 1950년 6월 28일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이때 박병규 일등중사는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0월 초순 건강을 회복하여 제5사단 제3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박병규 일등중사가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 중에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되어 10월 15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의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했다. 그러나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아군들이 철수하면서 사단은 12월 5일 17번 국도 상 춘천에 투입되어 철수 부대를 엄호했다. 이후 사단은 13일부로 춘천 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제5사단은 美 제10군단의 우측 전방 부대로서 캔자스선 북방 서화리 일대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잇는 新캔자스선을 향해 공격했다. 사단은 17일까지 14일간의 격전 끝에 新캔자스선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캔자스선 진지강화와 재편성에 주력할 수 있게 되었다.
박병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6월 4일부터 적 후방거점인 서화리를 목표로 공격하여 격전 끝에 6월 17일 사단의 최종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新캔자스선까지 진출했다. 그 후, 사단은 8월 초순 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고 있다가, 8월 말부터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에서 가칠봉 전투를 시행했다. 박병규 일등중사는 8월 29일 현리 일대에서 소대원을 통제하며 부대정비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규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3-ㅁ-06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