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규(朴炳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6800858
  • 전몰일자 : 19521220

공훈사항

박병규 일등중사는 출생지와 출생 날짜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등중사는 1951년 11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등중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무렵, 제8사단은 1951년 11월 호남지역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전담할 백야전사령부가 창설됨에 따라 공산군 게릴라를 소탕하기 위해 빨치산 소탕작전을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을 섬멸하고자 하였다.
제8사단은 저지부대와 거점수비대로 포위망을 압축하면서 공비의 근거지를 분쇄하고 반복수색으로 잔당을 색출하는 수색작전에 돌입하였다. 제8사단은 제1기 작전을 종료하고 1951년 12월 16일부터 제2기 작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회문산 및 백야산 지구의 공비토벌을 담당하였다. 제8사단은 1951년 12월 19일 회문산과 내장산 일대에 잠복 중인 북한군의 공비 근거지 20개소를 파괴하였다.
제8사단 장병들은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후 다시 미군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으로 이동하여 미 해병대 제1사단의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8사단이 진지 보수와 수색정찰을 강화하는 와중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적군은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8사단 장병들은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 가며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제8사단은 전투 종료 이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서 부대를 정비했다. 1952년 10월 25일 제8사단은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제34사단, 제35사단 간에 수차의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 능선상의 고지이다. 제8사단은 수도고지 인수 이후 적정파악을 위한 수색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일등중사는 1952년 12월 20일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규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ㅋ-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