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규(朴炳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716
  • 전몰일자 : 19520301

공훈사항

박병규 일병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했던 1951년 2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고,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병규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3월 중순, 제6사단은 중공군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이후 계속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으나,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공세적인 방어로 격퇴하고, 다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5월 24일부터 춘천 서북방으로 진출하여 28일에는 화천저수지 이남의 선까지, 6월 15일에는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철의 삼각지대의 우반부인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그동안 박병규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들락거리며 적정을 살펴 사단에 보고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및 보급소 등을 습격하여 후방을 교란했다.
제6사단은 1951년 가을이 되면서 유엔군 작전방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펼쳤다. 먼저 백암산 방어진지 전방의 819고지를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공격하여 탈취했고,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된 공격에 금성천 분지를 감제하고 있던 교암산을 탈취했다. 이후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하였고, 박병규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작전지역 내에서 수색작전 활동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3월 1일에 수색작전 중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3면–08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ㅁ-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