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권(박병권)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57314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박병권 하사는 1929년 12월 3일에 충청북도 청원군 사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병권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8일, 미 제7사단은 철원평야 동쪽의 중가산에서부터 김화 북쪽 하감령에 이르는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반면 중공군 제45사단은 오성산에서 김화로 뻗어 내린 능선 상의 고지군에 전초진지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중 상감령 동쪽과 서쪽에 저격능선(580고지)과 삼각고지(598고지)는 아 진지를 완전히 감제 및 관측할 뿐만 아니라 김화지역 방어에도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에 유엔군사령부 차원에서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유리한 휴전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두 고지를 공격하기로 했다.
박병권 하사가 소속된 미 제7사단은 1952년 10월 14일부터 제32연대가 먼저 김화 북방 7㎞ 지점에 위치한 삼각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으나,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후 중공군과 삼각고지를 두고 고지쟁탈전을 벌였다. 사단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에 미 약 2,000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삼각고지를 완전히 탈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제7사단은 군단장 명에 의거 삼각고지의 작전지역을 10월 25일에 국군 제2사단에게 넘겨주고 주진지 방어에만 전념했다.
미 제7사단은 1953년 초 진지를 강화하며 탐색과 소부대전투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방어력의 강화와 공세역량에 주력하던 중공군은 3월 23일 미 제7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역곡천 남안의 불모고지(275고지)와 포크찹고지에 대해 공격하여 탈취했다. 사단 장병들은 역습으로 고지를 탈취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조기에 타결하기 위해 군사작전의 확대를 스스로 억제한다는 군사전략에 의해 수세적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중공군은 휴전을 직전에 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한다는 전략으로 적극적인 공세행동을 취했고, 공격목표는 국군 사단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박병권 하사가 소속된 미 제7사단은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수색작전만 강화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6월 15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권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1면-012)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8-ㅇ-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