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구(박병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910

공훈사항

박병구 하사는 1926년 8월 27일에 경상남도 김해군(現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초순경 제5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보고하거나 지휘소를 습격하고 탄약고 등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병구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받고 후방을 차단당해 포위가 되었으나,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에 침투하여 위협하자 사단은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그 후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및 5월 공세를 맞아 가평, 문막, 단양, 제천, 홍천, 인제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철수와 공격을 반복했으며,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탈출과 재집결을 거치면서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했으며, 美 제10군단 예비로서 8월 초까지 강원도 현리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1951년 9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가칠봉 부근 전투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사단은 가칠봉 부근 전투에서 연대별로 또는 3개 연대로서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공격하여 세 번씩이나 목표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그때마다 적의 역습에 이를 상실했다. 박병구 하사는 양구 지역 1,211고지가 9월 5일에 1차 점령된 후, 9월 10일 분대원을 통제하며 적정 수집을 위해 적진에 침투 중 적 경계부대와 교전하다가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구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ㅎ-04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