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구(朴炳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00343
  • 전몰일자 : 19530720

공훈사항

박병구 일등중사는 충청남도 아산군(現 아산시) 탕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구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5사단은 캔자스(Kansas)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으나 적 4월 공세에 밀려 다시 소양강 남단으로 철수했으며, 적 5월 공세 때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하면서 캔자스선으로 진격하여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그 이후 美 제10군단의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 시 美 제10군단에 재배속된 제5사단은 8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가칠봉 부근 전투를 완수한 후 10월 20일 현 진지를 제3사단에 인계했다. 사단은 육본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인근 지역의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2년 1월 13일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방어하게 되었다. 7월 10일 적 제9사단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철원군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에 박병구 일등중사의 제27연대는 우측 전방 883고지 일대에 투입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6월 10일 제60군 3개 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을 공격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결국은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화천에서 전투력을 복원한 후 6월 26일 다시 이 지역에 투입되어 금성천 남단에서 748고지를 잇는 선을 방어했다. 중공군 제60군의 주력인 제180, 181사단과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을 금성천 북쪽으로 격퇴시키고 진지를 지켜냈다. 박병구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화천북쪽 백암산 진지를 방어 중 7월 20일 적 침투부대와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구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6-ㅊ-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