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구(朴炳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60943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박병구 일등중사는 충청남도 아산군(現 아산시) 탕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1월 10일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구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11월 27일 휴전회담에서 유엔군과 공산군은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합의했다. 이에 양측은 대규모작전을 자제했고, 전쟁은 휴전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작전과 전선 개선, 그리고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제5사단은 육본직할로 강원도 양양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인근 지역의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2년 1월 13일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방어하게 되었다. 7월 10일 적 제9사단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철원군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에 박병구 일등중사의 제27연대는 우측 전방 883고지 일대에 투입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6월 10일 제60군 3개 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을 공격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결국은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화천에서 전투력을 복원한 후 6월 26일 다시 이 지역에 투입되어 금성천 남단에서 748고지를 잇는 선을 방어했다. 중공군 제60군의 주력인 제180, 181사단과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을 금성천 북쪽으로 격퇴시키고 진지를 지켜냈다. 박병구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제27연대의 화천북쪽 백암산 진지를 방어하다가 7월 17일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구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3판-3면-21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ㅎ-05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