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관(朴炳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02636
  • 전몰일자 : 19500922

공훈사항

박병관 일병은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5월 하순 제1육군병원에 입대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은 후 의무병이 되었다.
제1육군병원은 1948년 5월 1일부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방동에서 창설하여, 국군 최초의 환자진료기관으로 환자치료에 전력을 다했다. 또한 병원은 전투 또는 훈련 중 부상한 장병들을 주로 치료했으며, 시설 경계는 의무병들이 담당했고, 때로는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인근 지역으로 출동하여 적 게릴라 소탕 작전도 실시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침략했을 때, 국군은 방어체계가 와해되어 3일만에 서울을 적에게 빼앗겼다. 불행 중 다행히도 동부전선의 제6, 제8사단이 조직적인 방어로 춘천-홍천 선에서 3일간 지연하여 체계적인 철수를 함에 따라, 서부전선의 병력들이 큰 피해를 받았음에도 한강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후 유엔군의 신속한 지원으로 낙동강방어선으로 조직적인 철수를 할 수 있었다.
박병관 일병이 소속된 제1육군병원은 전쟁 초기에 쏟아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1950년 6월 28일에 대구로 이동하여 치료에 전념했다. 북한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공세를 펼쳐 부산으로 진격하여 전쟁을 종결하고자 하였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더는 물러설 수 없다고 각오하고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는 데 성공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낙동강방어선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전투가 가열되자 전사상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려 왔다. 그 결과 전사상자는 속출하였고, 의료진들은 잠시도 쉴새 없이 치료에 전념했다. 박병관 일병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도와 치료에 전념하다가 1950년 9월 22일 적이 투하한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2-ㅈ-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