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갑(박병갑)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210227
  • 전몰일자 : 19511124

공훈사항

박병갑 이등중사는 1926년 12월 3일에 평안북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을 시작한 9월 19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직할부대인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박병갑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하순, 제11사단은 당시 지휘소를 남원에 두고, 예하 연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역에 각각 분산 배치되어 후방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박병갑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중대는 3월 17일에 화학산 일대에서 제9연대와 협조하여 게릴라들과 교전해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공비들의 세력 단위 활동하는 것은 소멸되었으나, 소규모 활동은 이어 갔다. 이에 사단은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제11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시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에서 저지했다. 이후 5월 7일부터 반격을 실시하여 11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간성-건봉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6월 10일에 거진-건봉령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으로 소강상태가 계속 되었다.
사단 수색중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및 보급소 등 주요시설을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전투 없는 상황에서도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거나 적의 주요시설을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병갑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 중 11월 24일에 적 부대에 발견되어 추격을 받았다. 이날 그는 퇴각하면서 적의 공격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갑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6면-279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ㅅ-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