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갑(朴炳甲)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29

공훈사항

박병갑 순경은 1925년 5월 27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온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홍성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온양경찰은 주요 시설 경비와 온양-평택, 온양-천안, 온양-당진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4일 수원을 점령한 적은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경부가도를 남진했다. 충남경찰 비상경비사령관은 예하 경찰관서에 적의 오열과 지방공비를 색출하도록 특별 지시를 내렸다. 충남경찰은 군의 요청에 따라 경부선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1대대는 청양에 제1중대, 정산에 제2중대, 대천에 제3중대를 배치했으나 예산과 홍성에 적이 침입하여 홍성-대천 지역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제1중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포로 50명, 사살 2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7월 12일 공주를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은 일부 병력을 강경·논산으로 우회시켜 대전 점령을 기도했다. 7월 15일 제1대대장은 제1중대 130명을 직접 지휘하여 대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집결해 있는 수십 명의 북한군을 포위 급습하여 사살 3명, 포로 2명의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 전투에서 지방 공비 40명을 사살했다. 북한군이 계속해서 남진함에 따라 온양경찰은 공주-무주-거창-창녕을 거쳐 8월 4일 함안에 도달했으며,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까지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온양경찰은 9월 17일 함안을 출발하여 온양을 향했다. 이 시기 미처 북으로 퇴각하지 못한 북한군이 많이 있어서 온양경찰은 이동 중 수차례 북한군과 전투를 치렀다. 9월 29일 온양경찰이 홍성을 지날 무렵 북한군 제4사단 예하부대로 추정되는 잔적과 전투가 벌어졌다. 박 순경은 적 1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전투를 치르던 중· 적의 공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갑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ㄴ-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