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범학(朴範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3973
  • 전몰일자 : 19500629

공훈사항

박범학 일병은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12월 하순, 충남 온양의 제13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9년 1월 10일부로 경기도 수색으로 이동하였고, 동년 6월 1일부로 경기도 문산으로 이동하여 개성 우측지역의 38도선 경비 임무를 담당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기습적인 침략을 했을 때, 박범학 일병이 소속된 제3대대는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장병들은 적이 평소에 하던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전 전선에 걸친 대규모 침략이라는 걸 느꼈다. 대대는 적의 대규모 포병집중사격으로 통신선이 끊어져 상급부대와는 연락이 끊겼다. 대대 장병들은 중과부적으로 단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소대 및 분대 단위로 분산하여 임진강을 건너 파평산 지역으로 철수했다. 한편 제1, 제2대대는 임진강선과 파평산을 연하여 주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3대대 장병들은 파평산 후사면에서 부대정비와 재편성을 실시한 후 연대 예비로서 투입될 준비를 했다. 북한군 제1사단 주력이 6월 26일 야간에 문산 돌출부를 다시 공격하고 전차부대로 증강된 부대들은 1번 국도와 주저항선인 파평산(498고지) 남단으로 공격했다. 이 지역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자, 사단은 파평산에 배치된 대대의 퇴로 차단이 염려되어 6월 27일에 최후저항선인 봉일천 지역으로 철수를 명령했다.
제13연대는 6월 27일에 우측 연대로서 방어 지역은 도내리-신산리 간 4km 정면에 배치되어 6월 28일 오전 8시까지 적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했다. 이날 새벽에 한강교는 이미 폭파되었고, 아침에는 적 전차가 미아리에서 서울 시내로 진출했다는 급보를 접하자, 사단에서는 야간을 이용하여 행주와 이산포에서 한강을 도하, 철수하도록 명령했다. 박범학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이날 야간에 한강을 건너오던 중에 적의 사격으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치료 중 6월 29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범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1면-1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ㅇ-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