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범집(朴範集)

  • 군별 : 공군
  • 계급 : 소장
  • 군번 : 50002
  • 전몰일자 : 19501112

공훈사항

박범집 소장은 1917년 9월 7일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8년 5월 14일부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항공부대 창설요원이 되었다. 당시 조선경비대의 항공부대 창설과 관련된 간부요원은 최용덕, 김정렬, 이근석, 장덕창, 김영환, 이영무 등 7명이었다.
공군은 1948년 5월 5일에 경기도 고양군 수색에 위치한 조선경비대 제1여단사령부 내에 통위부 직할부대인 항공부대를 창설했고, 이들 7인이 소위로 임관하여 전입함으로써 창설의 주역이 되었다. 이어 동년 9월 8일에 항공부대는 미군으로부터 L-4연락기 10대를 인수받아, 9월 13일에 여의도기지(汝矣島基地)에서 편대 비행을 실시했다.
박범집 소장은 항공부대 창설부터 참가하였고, 1950년 6월 25일 여의도 항공기지에서 근무할 때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북한 공군의 전력은 YAK-9, IL-10기를 포함한 전투기만 226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에 한국 공군은 연락기 및 훈련기로 L-4/5기 12대와 T-6기 10대 등 총 22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 공군은 당시 가용한 모든 항공기를 동원해 북한군의 남진을 최대한 저지하고자 했다. 6월 26일부터 국민성금으로 구입한 T-6건국기는 8개의 폭탄을 장착하고, L-4/5기도 후방석의 관측사가 2개의 폭탄을 가슴에 안고 출격하여 저공비행으로 산간 계곡을 비행하며 북한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전 항공기는 6월 27일에 보유한 폭탄을 모두 사용함으로써 정찰 작전으로 전환했다. 다행히 6월 27일부터 미 공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여 제공권을 장악하자, 한국 공군은 L-4/5기를 조정하여 육군본부와 군단 또는 사단에 주요한 작전명령서를 전달하는 연락 임무를 수행했다.
공군비행단은 7월 2일에 미군으로부터 F-51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인수하여 긴급히 작전에 투입되었다. 박범집 소장은 F-51무스탕 전투기를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조종하여 대구 동촌 기지로 날아왔다. 한국 공군은 최초로 전투기를 보유하게 되어 지상작전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공군은 낙동강방어선전투와 반격작전 시에 지상작전을 지원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러던 중 박범집 소장은 11월 12일에 함흥 일대에서 국군 제1군단을 지원하다가 적의 대공포화에 맞아 항공기가 추락하면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범집 소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제1장군묘역-8판–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1-ㅇ-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