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범제(박범제)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31392
  • 전몰일자 : 19510906

공훈사항

박범제 하사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1년 7월 26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의 부대 전입 당시, 중공군은 1953년 7월 13일 제8사단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개시했다.
금성지구의 좌·우측방으로 중공군이 우회함에 따라 제8사단은 중공군에 포위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제21연대 장병들은 제8사단 제10연대와 제16연대의 철수를 엄호하며 금성천 남측 방면으로 철수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1951년 7월 말, 성공적인 철미동 지구 전투 이후 후방지역 경계 임무를 비롯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수색을 통해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었다. 1951년 8월 미군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제한목표공격계획을 통해 동부전선의 방어선을 전진시켰다.
이에 제8사단은 미군 제10군단 제2사단 등과 인제군, 양구군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제21연대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 북한군의 전초기지를 공격하며 고지쟁탈전을 전개했다.
제8사단은 1951년 8월 9일부터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장승리 일대의 노전평에 주둔한 북한군 제2사단, 제13사단을 공격했다. 제8사단은 1951년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3차에 걸친 노전평 전투에서 군단이 부여한 목표고지를 성공적으로 점령함으로써 서화계곡 도로망을 확보하여 해안분지를 공격하는 군단 주공부대의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8사단은 북한군 4,324명을 사살하고, 포로 256명을 획득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전사 540명, 실종 124명, 부상 2,464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박 하사는 1951년 9월 6일 인제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범제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ㅊ-02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