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범영(박범영)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201446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박범영 대위는 1927년 6월 22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대위는 예비역이었으나, 1950년 8월 중순 재소집에 응하여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 교관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7월 초순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그 후 8월 1일 이 교육대가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다가,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대구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박 대위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자 낙동강 선에서 최후방어전을 펼치고자 했다. 유엔군은 8월 1일부로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방어에 임했다. 8월 중순 이후 전선이 왜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대구 북방에 형성됨으로써 이에 호응하여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정부기관과 육군본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등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적 게릴라들의 활동은 소강상태를 이루다 중공군이 참전하자 다시 활기를 띠었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1훈련소는 신병교육대 교관·조교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활동에 대응했다. 박 대위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때때로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어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곤 했다. 11월 26일 부대 인근에 적 게릴라가 출몰하자 박 대위와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박 대위는 대원들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 게릴라와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범영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4-ㄴ-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