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번장(朴繁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1965
  • 전몰일자 : 19510907

공훈사항

박번장 일병은 1934년 10월 19일에 경기도 연백군 호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국군 및 유엔군이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반격을 준비하던 1951년 3월 3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번장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4월 말, 제2사단은 4월 28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 일대로 이동하여 반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고 38도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0일을 전후하여 중공군의 공격징후들이 포착되자 방어로 전환했다. 이후 중공군의 5월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연하는 선에서 저지시키고 5월 20일을 기해 반격으로 전환했다.
박번장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5월 24일부터 본격적인 반격작전을 감행하여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제압하며 진격했다. 그리고 6월 12일에는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캔자스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제2사단은 8월 2일에 공세적인 행동으로서 방어지역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공격했다. 박번장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서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 지원을 받아 보전 협동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필사적인 역습으로 빼앗기고, 이후 피아간에 공방전은 8월 8일까지 계속되었으나 745고지를 탈취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제2사단은 9월 1일에 745고지에 대해 공격했다. 박번장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 745고지 우측의 735고지를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을 9월 3일까지 계속하여 745고지와 735고지를 탈취했다. 그는 9월 3일 전투에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9월 7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번장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780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39묘역-1판-1149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ㅅ-06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