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백욱(朴白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208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박백욱 일병은 경상북도 영천군(現 영천시) 자양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후퇴하던 1950년 11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同 훈련소의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초순 각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8월 14일 대구에서 육군본부 직할로 제1훈련소가, 부산에는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2일에 경남 구포에 제3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에 제5훈련소가 창설되면서 신병을 양성했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적 게릴라 잔당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 파괴했다. 이들의 유격활동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 37도선까지 남하하자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게릴라들이 출몰할 때마다 제주도 주둔 육군 제5훈련소가 이들을 소탕해왔다.
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소탕작전을 했다. 1951년 2월 12일 서귀포에 적이 출몰하여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어 적들을 격멸했다. 박백욱 일병은 적을 추격하던 중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조기에 회복 후 2월 하순경 강원도 홍천 일대에 배치된 제8사단 제16연대로 전속되었다.
당시 제8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 시 횡성전투에서 전력의 70%를 상실하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이후 사단은 영월 북쪽 주천리 일대로 철수하여 부대를 수습했다. 사단은 다시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를 재편성한 후 후방의 공비토벌 작전에 임하게 되었다.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한 제16연대는 4월부터 무장공비토벌 작전을 수행했다.
연대는 토벌 작전이 끝나고 5월 19일 충청북도 제천으로 이동하여 美 제10군단 제3사단 예비로 군단 후방을 경계했다. 이 과정에서 박백욱 일병은 5월 19일 부대이동 중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백욱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6-ㄹ-00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