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백수(朴白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02984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박백수 일병은 경상남도 창원군 창안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2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백수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북한군 제12사단은 비학산 일대에서 9월 공세가 시작하였다. 그가 소속된 연대는 9월 4일 형산강 이남에서 북한군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전환해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원산탈환작전을 완료한 박백수 일병과 장병들은 10월 16일부터 30일까지 영흥-함흥-성진 진격전을 전개하였으며 11월 말 길주에서 북한군을 소탕하는 수훈을 세웠다. 북한군이 반격해 오면서 서서히 적정이 강화되기 시작하자, 박 일병과 장병들은 12월 14일 북청과 이원에서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북한군 병력을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박백수 일병과 연대병력은 도채동-서림-양양선에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중공군의 정면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은 정면공격보다 오대산과 설악산으로 연결되는 산악지형을 발판으로 연대의 후방으로 진출하여 후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기도하였다. 이때 박 일병과 장병들은 12월 30일 대사리로 진출하여 이 일대에 출몰한 중공군 약 1,000명을 포착하여 화력전에 이은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이들을 격파 분산시켰으며, 이 적을 추격하여 하진부리까지 진출하였으나 분산 탈주에 능한 중공군을 추격하는데 실패하였다.
1951년 1월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 공세를 받았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백수 일병은 1951년 1월 3일 주문진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백수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0328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ㅈ-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