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백규(朴佰奎)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7

공훈사항

박백규 경사는 1924년 3월 15일 전남 진도군 곡성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진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완도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진도경찰은 진도-해남, 진도-목포를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6일 하동의 퇴로가 차단되자 고립된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은 7월 27일 강진부대에 이어 장흥·보성·화순부대가 완도로 철수하여 해상유격전을 전개했다. 전남 비상경비사령부의 지시에 의거 진도경찰서의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 수 명과 함께 완도 해상유격전에 투입되었다. 완도에 상륙한 전남경찰부대는 완도 경찰병력 300명과 나주 경찰병력 270명, 화순 경찰병력 60명으로 하여금 본부를 방호하도록 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청산도를 비롯한 인접 각 도(道)서를 방어하기 위해 청산도에 주둔시켰다. 또한 영광 경찰병력 40명과 무안경찰서 선박부대 90명을 부산으로 보내어 후방지원을 하도록 조치하고, 강진·장흥 경찰병력은 유격전을 펼치며 적정을 수집하도록 했다.
청산도로 이동한 진도경찰부대(박 경사와 휘하의 병력 10여 명)는 청산도를 중심으로 해상경계활동을 강화했다. 진도경찰부대는 8월 5일 장흥부대(180명)와 함께 노화도에 상륙한 적을 공격하여 10명을 사살하고 양민 330명을 구출하였으며, 그 중 50명을 청산도로 이동시켰다.
8월 8일 진도부대와 장흥부대는 강도 부근에서 적 선박 1척을 격침시켰으며, 8월 15일에는 금당도에 상륙하여 적 5명을 사살하였다. 적은 경찰의 도서작전으로 인하여 그들의 활동이 봉쇄되자 소도에 진출하여 완도 상륙을 기도했다. 8월 16일 진도부대와 장흥부대는 야간에 소도를 기습하여 적 3명을 사살하고 중기관총 1정을 노획했다. 전투는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는데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멸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백규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ㅂ-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