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백규(朴佰奎)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31

공훈사항

박백규 경사는 1924년 3월 15일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8년 6월 9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완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완도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완도경찰은 전남비상경비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오열 색출과 완도 해안경계 활동을 강화했다. 완도에는 완도서장 이하 200명의 경찰병력이 대한청년단원 100명과 함께 치안을 확보하고 있었다.
7월 26일 하동의 퇴로가 차단되자 고립된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은 7월 27일 강진부대에 이어 장흥·보성·화순부대가 완도로 철수하여 해상유격전을 전개했다. 완도에 상륙한 전남경찰부대는 완도 경찰병력 300명과 나주 경찰병력 270명, 화순 경찰병력 60명으로 하여금 본부를 방호하도록 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청산도를 비롯한 인접 각 도(道)서를 방어하기 위해 청산도에 주둔시켰다. 또한 영광 경찰병력 40명과 무안경찰서 선박부대 90명을 부산으로 보내어 후방지원을 하도록 조치하고, 강진·장흥 경찰병력은 유격전을 펼치며 적정을 수집하도록 했다.
8월 18일 평일도에 적 90명이 상륙하여 경찰 5명을 사살하고 3명을 납치했다는 정보에 따라 완도 경찰부대와 강진경찰부대가 합동으로 평일도에 상륙하여 적을 소탕했다. 경찰의 도서작전으로 인하여 적의 활동이 제한되자 적은 소도에 진출하여 완도상륙을 기도했다. 전남비상경비사령부는 완도 경찰병력 중 특공대 30명을 야간에 급파하여 적 3명을 사살하고 중기관총 1정을 노획했다.
전남비상경비사령부는 총본부를 청산도에서 완도로 이동하고, 무안서 80명을 여수 관내 남면도에서 철수시켜 완도에 증원 배치했다. 그리고 강진부대는 고금도에, 화순부대는 신지도에, 장흥부대는 노화도로 철수시켜 조락도로 각각 이동 배치했다.
12월 31일 수십 명의 적이 완도에 기습 상륙하여 완도경찰서를 습격했다.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백규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ㅋ-02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