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배근(朴培根)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13222
  • 전몰일자 : 19521009

공훈사항

박배근 하사는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6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7사단 48야전수송대에 배치되었다.
미 제7사단은 부족한 병력을 카투사(KATUSA) 병으로 대부분 보충하였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수많은 전투를 치루었다. 즉 사단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실시하여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이후 북진으로 함경남도 이원으로 상륙하여 혜산진까지 진출했었다. 다시 흥남철수작전으로 부산으로 상륙하여 재편성과 부대정비를 마친 후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여 38도선으로 투입되었다. 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미 제9군단 소속으로 중부전선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춘계공세작전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가평-춘천-화천-김화방향으로 진격했다. 이후 전선은 1952년까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박배근 하사가 소속된 미 제7사단은 3월 중순에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철원평야 동쪽의 중가산에서부터 김화 북쪽 하감령에 이르는 지역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당시 중동부전선에는 1952년 7월부터 12월까지 중공군 4개 군단(제38·제15·제12·제68군단)과 전초진지 및 방어선상의 주요 고지를 서로 점령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진행되었다. 또한 군단 좌측의 국군 제9사단이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에서 혈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1952년 여름부터 수차례에 걸쳐 아군 진지를 공격했으며,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군 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미 제9군단은 10월 초에 저격능선과 삼각고지를 탈취하기 위한 ‘쇼다운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중공군이 백마고지에 집중하는 것을 막고 차후 작전에 용이한 주요고지를 탈취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중공군은 아군 지역에 공격을 위해 수시로 정찰대를 아군 지역으로 침투시켰다. 박배근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10월 9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배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7묘역-5판-1030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ㅇ-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