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방온(朴芳溫)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3

공훈사항

박방온 순경은 1922년 12월 15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해남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영광군 모량면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해남경찰은 전남도경의 지시에 따라 해남-강진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했다. 7월 초 박 순경을 포함한 해남경찰병력 일부는 영광경찰서에 증원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하여 곡성-전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사단·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이어서 7월 20일 곡성을 점령했고, 그 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하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7월 20일 전남도경은 보성으로 철수했고, 전남도경이 보성으로 철수함에 따라 영광경찰도 7월 23일 후방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영광경찰은 이동 중 영광군 묘량면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선두부대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영광경찰 병력은 필사의 저항을 했으나 상당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박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방온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경찰2묘역-512판-252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8-ㅌ-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