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방근(朴芳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5245
  • 전몰일자 : 19510210

공훈사항

박방근 일병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0년 8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 제21연대는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 후 9월에는 국군과 함께 반격을 개시하여 10월에는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8사단 제21연대는 1950년 11월 23일부터 11월 28일까지 평안남도 영원, 맹산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세로 4일간의 방어전투를 전개한 후 철수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21연대는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토산에 도착한 제8사단 장병들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해 1950년 12월 9일 토산을 출발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수나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하여 점령했다. 하지만 제21연대의 화력은 중공군에 비해 열세했고 적군의 우회침입작전에 직면하여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했다. 제8사단은 1950년 12월 24일에 중공군 제66군 소속 3개 사단의 침입을 방어했다.
중공군은 이 일대에 대병력을 투입하여 국군과 유엔군에 포위를 시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가까스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지연전을 전개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11월간 평안도 일대에서 철수했다. 1950년 12월 31일부터 익년 1월 초순까지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개시되었다. 제8사단은 강원도 화천군에서 분전했지만 병력의 열세로 철수했다. 1951년 1월간 제8사단 장병들은 강원도 홍천군 양덕원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했다.
제8사단은 2월에 접어들어 강원도 횡성군에 주저항선을 설치하고 적의 공세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철저히 구축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당시 영하 15도 이하의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8사단은 1951년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1951년 2월 10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방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ㅍ-01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