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민화(朴敏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3701696
  • 전몰일자 : 19501106

공훈사항

박민화 일병은 강원도 춘천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북진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에 서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10월 19일 제7사단에 입대하여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 중이었고, 제7사단도 북진작전 중인 상황이었다. 유엔군의 북진작전 때 사단은 제2군단에 배속되었고, 제8사단을 후속하여 마식령산맥을 넘어 10월 17일 곡산에 도달했으며, 선두부대인 제8연대는 수안까지 진출했다.
이 무렵 사단에는 “국군이 미군보다 먼저 평양을 점령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가 하달되었고, 평양에 가장 근접해 있던 제8연대가 평양 공격부대로 선정되었다. 제8연대는 18일 승호리 일대에서 대동강을 도하하여 김일성대학과 모란봉 일대로 진격했고, 20일 저항하는 북한군 제17, 제32사단의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제8연대와 사단은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이 작전에서 박 일병과 병기중대원은 평양으로 진격하는 제8연대에 적시적으로 탄약을 보급함으로써 평양 탈환에 크게 기여했다. 평양이 탈환되자, 사단은 21일 그 북방의 기림리, 노산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육군본부 직할로 전환되었다. 사단은 29일까지 평양과 그 북방 일대의 잔적소탕 임무를 수행했다.
10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된 사단은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집결 후, 다음 날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11월 3일 사단은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사단 장병들은 7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사단이 비호산을 확보함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함으로써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속히 진격하는 부대에 적시적으로 탄약 지원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박 일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예하부대에 대한 탄약 추진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그는 11월 6일 비호산전투에서 탄약보급에 앞장서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민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5판-2면-21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0-ㅇ-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