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민수(朴珉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55759
  • 전몰일자 : 19520708

공훈사항

박민수 하사는 1930년 5월 7일에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면(現 노화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10월 30일,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제5사단에 입대하여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민수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휴전회담장이 있는 개성이 포함된 서부전선에서는 충돌을 자제하였으나, 중・동부를 중심으로 한 전선에서는 ‘血戰’을 벌이고 있었다. 제5사단은 해안분지(펀치볼)확보 작전 시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951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2일까지 군 예비로서 양양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을 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사단은 1월 13일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단의 주저항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박민수 하사가 소속된 제35연대를 배치하고 제27연대를 예비로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351고지 전초진지 방어를 담당한 제35연대는 주저항선에 제2대대만을 배치하고 전초진지에 제1, 3대대를 배치하여 전초진지의 방어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소규모 수색정찰 활동을 하는 등 전선은 7월 10일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이에 연대는 진지를 더욱 강화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박민수 하사는 1952년 7월 8일 351고지 부근에서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매복 중 적 침투부대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민수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ㅁ-06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