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민수(朴珉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47804
  • 전몰일자 : 19520209

공훈사항

박민수 일병은 1931년 7월 22일에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9월 중순경 양구에 위치한 제5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민수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양구 일대의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있던 제5사단은 美 제9사단에 배속된 제36연대가 ‘피의 능선(Bloody Ridge)’전투를 완수하고 복귀한 뒤, 9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가칠봉 부근 전투에서 1,211고지를 목표로 공격했다. 1,211고지는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핵심목표로써, 사단은 세 번씩이나 목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으나 그때마다 적의 역습에 이를 상실했다.
결국 10월 14일 양구 북방의 894고지-931고지-851고지를 잇는 단장의 능선 전투가 종결될 무렵, 제5사단은 그 동측의 841고지를 점령하면서 이 전투를 종결했다. 비록 1,211고지를 점령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사단은 끈질긴 전투로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굳게 지켜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제27・제2・제13사단을 맞이하여 교전과 혈전을 벌인 이 전선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까지 육군 예비로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을 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다음날부터 사단은 동해안의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좌측 전방에 박민수 일병이 소속된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제35연대를 배치하며 제27연대를 예비로 집결 보유하고 전초진지인 351고지는 제35연대가 2개 대대를 투입하여 전초진지의 방어력을 강화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박민수 일병은 복무기간 많은 적을 사살했으며, 2월 9일 연대 주방어선에서 진지보강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민수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5704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ㄷ-04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