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미술(朴未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6133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박미술 일병은 1931년 6월 8일에 경상북도 영천군 임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으로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던 1950년 10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미술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중순, 제6사단은 국군 제2군단의 예비로서 덕천 및 영원 일대에서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국군 제2군단은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를 실시했으나, 또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고 평양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얼마 후 유엔군은 평양방어선마저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이곳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이에 국군 제2군단은 12월 3일경에 평양의 동측 지역에서 철수를 개시했다. 이때 제6사단 장병들은 북창-시변리-고랑포 축선으로 철수하였으며, 철수 도중에 시변리와 고랑포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들의 방해 공격을 많이 받았으나 성공적으로 제압하며 철수했다. 사단은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는데, 제7연대는 전곡, 제19연대는 추동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예비인 제2연대는 동두천 일대에 집결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이 곧 있을 것을 예상하여 방어진지 강화에 노력을 집중했다.
드디어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향한 3차 총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실시했고, 제6사단 장병들은 이에 맞서 죽음을 무릅쓰고 저지하고자 했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1951년 1월 1일 야간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날 박미술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 장병들은 추동리 일대에서 덕정리-창동을 거쳐 남한산으로 철수했다. 이날 그는 철수하던 중 적의 침투부대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미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ㅅ-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