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미산(朴未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1960
  • 전몰일자 : 19501106

공훈사항

박미산 일병은 1926년 4월 7일에 경상북도 경산군 진량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박미산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초순, 제6사단은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화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후 김화–신고산–성천–양덕–순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23일에는 희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24일에 시작된 유엔군의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에 참가하여 10월 26일에는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한 후 제7연대 제1대대 병력은 국경선 경비임무에 돌입했다. 이때 은밀히 침투한 대규모 중공군으로부터 후방을 차단당하여 전 부대는 현 위치에서 진격을 중지하고 철수를 했다. 사단 장병들은 30일까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공중보급을 받으면서 험준한 산로를 따라 130km의 원거리를 각각의 부대별로 남하하여 개천으로 집결했다.
박미산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항상 사단의 제일 선두에서 작전하며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으로 보고하고 아군 후방으로 침투하는 적을 발견하면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는 후방이 중공군에게 차단된 상황이라 수색소대는 분대별로 분산하여 철수했다. 중공군들은 곳곳에 은밀히 숨어 있다가 철수하는 제6사단 장병들을 괴롭혔다. 사단은 철수할 때 전투손실이 막대하여 개천에 도착해서는 재편성 및 부대정비에 집중했다.
제6사단은 개천 집결지에 주둔하면서 중공군의 침투 교란에 대비해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박미산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11월 6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중공군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미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3면-18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ㄱ-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