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미봉(박미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53990
  • 전몰일자 : 19510618

공훈사항

박미봉 이등중사는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시기인 1950년 3월 중순경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육군통신학교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통신학교 조교요원으로 교도대에 배치되었다.
통신학교는 1947년 1월 20일에 경남 진해에서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대 통신학교가 모체가 되었다. 이 통신학교는 1947년 10월 23일 경기도 태릉에 위치한 남조선 국방경비대 사관학교로 이동하였고, 통신교육대로 개칭되었다. 이후 영등포에 위치한 통위부에서는 1948년 6월 15일에 직속으로 제51통신대대를 창설했는데, 통신교육대에 예속시켰고, 이는 무선통신교육대로 개칭했다. 그리고 무선통신교육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맞춰 육군 직할 통신학교로 발족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곳곳에서 통신이 두절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육군통신학교에 전방 사단과의 통신을 소통시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육군통신학교 교도대는 즉각 제1사단 지역으로 출동하여 육본과의 통신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박미봉 이등중사는 제12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파평산 지역으로 출동하여 통신 소통을 위한 유선 가설 임무를 수행했다. 연대는 파평산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박미봉 이등중사를 비롯한 부대원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공산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했다.
1951년 5월 중순경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따라서 제1사단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으며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 또한 계속되었다.
이후 사단은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상의 영평 지역을 확보할 목적으로 문산 축선에 투입되었다. 계속해서 사단은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했다. 그러던 중 박미봉 이등중사은 소대원을 통제하며 유선 가설 중 후방으로 먼저 침투한 적 정찰대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1951년 6월 18일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미봉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6면-279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ㅈ-05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