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미문(朴米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901222
  • 전몰일자 : 19500810

공훈사항

박미문 이병은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미문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7월 하순, 제6사단은 문경-점촌-함창 일대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지연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에 제6사단은 육본 명령에 의해 7월 12일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수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후 제19연대 장병들은 7월 31일에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라는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8월 3일에 용기동 북쪽 2km 지점 양곡동 일대의 능선을 점령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러던 중 북한군은 8월 6일에 병력과 화력을 대폭 증강하여 공격했고, 이에 연대는 용기동~양곡동간 능선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몇 번은 격퇴했으나, 결국은 전투력의 열세로 진지에서 후퇴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로 철수했다.
박미문 이병이 소속된 대대는 8월 8일 오전 11시경에 2개 대대 규모의 적이 선돌주막 부근까지 진출할 때에 강력히 저항하여 격퇴하고, 이어서 즉각적인 역습으로 적을 선돌주막 북쪽으로 격퇴했다. 그러나 후퇴했던 적들이 병력과 화력을 증강하여 8월 9일 새벽 3시경에 재공격하자, 연대 장병들은 236고지에서 계속 방어하는 것은 아군의 피해만 증가시킬 것으로 판단하여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였고, 이후 조동과 외곡동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적들은 8월 10일에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아군은 강력한 저항으로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미문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7685국)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32면-1718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ㅎ-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