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미룡(박미룡)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박미룡 하사는 1919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 태길에서 출생하였다. 박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하사는 1950년 8월경에 입대하여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였다.
이후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제9사단은 3월 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 이후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북상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따라서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3월 12일에 송계리에 투입되었다.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했다.
4월 25일부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 결과로 연대는 인제 남방의 598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징후가 포착되어 사단은 방어 태세로 전환하였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은 현리 일대의 국군에 대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서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박 하사는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미룡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ㅂ-00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