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환(박문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602189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박문환 하사는 강원도 삼척 시상장 철암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하사는 1949년 11월 27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제8사단 제21연대는 그 후 9월에 국군과 함께 반격을 개시하여 10월에는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11월 9일부터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했다. 국군 제2군단은 최초 공격개시선을 덕인봉-신기봉-삼월강거리-백령천 선으로 설정하고, 제8사단으로 하여금 23일까지 점령하도록 명령했다.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3일 전방지휘소를 맹산에 개설했다. 연대는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 전투에 돌입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서부에서는 청천강을 도하해 북진을 계속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시련을 겪었으며, 11월간 평안도 일대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맞이하여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제21연대는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토산에 도착한 제8사단 장병들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해 1950년 12월 9일 토산을 출발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수나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하여 점령했다. 하지만 제21연대의 화력은 중공군에 비해 열세했고 적군의 우회침입작전에 직면하여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했다. 제8사단은 1950년 12월 24일에 중공군 제66군 소속 3개 사단의 침입을 방어했다.
제21연대는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영하 15도의 혹한에서 장병들과 분투했지만, 중공군의 공세는 압도적이었다. 박 하사는 1951년 1월 1일 강원도 횡성으로 철수 작전을 엄호하던 도중 적의 포격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환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1면-69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ㄹ-06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