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호(박문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2819
  • 전몰일자 : 19521023

공훈사항

박문호 중위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1월 4일에 경남 김해의 육군공병학교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훈련과정을 수료한 후 공병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에 소대장으로 배치되었다.
박문호 중위가 부대로 전입했던 6월 중순, 제2사단은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 직전 사단은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전선의 교착으로 별다른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 강화라는 목적 외에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한다는 전략적인 목적 아래 취해진 훈련이었다. 공병대는 교량 거부 및 장애물 설치 등 전기전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그리고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공산군은 휴전협상에서 지연전술을 쓰며 군사력 증강에 노력했다. 따라서 유엔군사령관은 공산군의 공격 의지를 분쇄하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에서는 오성산에 남쪽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해발 580미터의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사단은 10월 1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으나,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18일에 다시 공격하여 빼앗았으나 중공군의 역습을 받았다.
박문호 중위는 당시 공병소대장으로서 전방 연대를 직접지원하며 공격을 선도했다. 공병은 항상 공격작전 시에는 최전방에서 장애물을 개척하며 공격을 선도하고, 방어작전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가 지휘하는 공병소대는 10월 23일 공격작전 시에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을 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호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829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33묘역-판-13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ㅁ-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