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호(박문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5050
  • 전몰일자 : 19510920

공훈사항

박문호 일병은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문호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3월 9일 속사리 일대 적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임진강과 화천저수지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6월 3일 오후 3시에 북한군 1개 중대규모가 선제 기습공격으로 박 일병과 연대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칠절봉 부근 주저항선 돌파를 기도하였으나 격퇴되었다. 그러나 고지에서 패한 북한군은 다음날 1개 대대 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다시 공격해왔다. 쌍방은 매봉산과 칠절봉 일대에서 오전 내내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근접전투를 벌이며 치열한 공방전 끝에 북한군을 격퇴시켰다. 9일과 10일에도 북한군의 공격은 향로봉 부근으로 계속되었으나 그와 연대병력은 그때마다 화력을 집중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12일을 기하여 열흘 동안의 격전을 일단락 짓고 향로봉은 물론 북한군 거점이었던 산두곡산과 향로봉 서쪽의 940고지마저 수중에 넣었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한 다음 9월 6일에 단행된 군의 전선 조정에 의거 군단 서측의 방어선이 2km 축소됨을 계기로 향로봉-건봉산-까치봉-송현리를 방어하게 됨에 따라 재배치되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수적인 열세에도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문호 일병은 1951년 9월 20일 향로봉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09-ㅎ-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