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출(朴文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068
  • 전몰일자 : 19501218

공훈사항

박문출 일병은 부산시 서구 아미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보충대에 배치되었다.
제1보충대는 1949년 9월 15일 경기도 수원에서 창설되어 신병 보충 업무를 수행했다.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고, 장병들의 보충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박 일병은 입대한 장병들을 부대까지 이송하는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박문출 일병이 소속된 보충대는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부대로 편성되어 김포반도에 투입되었으나, 빈약한 장비와 효율적인 부대 지휘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관계로 전투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 일병과 장병들은 투혼을 발휘하며 북한군 제6사단의 전진을 지연시킴으로써 국군의 한강방어선 형성과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제1보충대는 수원에서 재편되어 7월 4일 육군본부를 따라 대전으로 이동했다. 대전 방어선이 위협을 받자 육군본부는 7월 14일 또다시 대구로 이동했고, 제1보충대도 함께 대구로 이동했다.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하기 위해서는 병력보충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국방부에서는 신병교육을 목적으로 8월 14일 제1훈련소를 창설했다. 이때 제1보충대는 제1훈련소에 편성되었고, 동 훈련소는 군사훈련과 보충업무를 병행했다.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되고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 주요 기관들이 대구에 위치함에 따라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심해졌다. 이들 게릴라들의 활동은 북진작전 때 약화하였으나, 중공군이 개입하고 전선이 다시 남하함에 따라 또다시 활기를 띠었다. 당시 전선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대구방위사령부는 제1보충대를 포함한 지원부대들로 기동타격대를 임시 편성하여 이들에 대응했다.
박 일병은 기동타격대원들과 함께 12월 18일 대구 시내 부대 인근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게릴라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박문출 일병은 선두에서 수색을 하다 적들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084-ㅇ-06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