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철(朴文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1985
  • 전몰일자 : 19510303

공훈사항

박문철 일병은 서울시 서대문구 성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박 일병은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1년 1월 19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제3차 공세에 밀려 37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던 상황이었다. 국군 철수과정에서의 부대간격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영주 방향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이때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하고, 이어 2월 10일까지 홍천 탈환전에 투입되어 분전했으나, 홍천을 탈취하지는 못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평창으로 북상하여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횡성 동북방에서 공격하던 연대는 중공군 제197사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섬강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연대의 선전으로 횡성 후방으로 우회 기동하여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하던 중공군은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연대는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횡성-원주 남동쪽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 제5군단이 제천 방향으로 돌파구를 확장하며 사단을 끈질기게 공격함에 따라 연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연대는 제천 북방의 성남리 부근에 진지를 편성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했고, 2월 18일 적의 공세는 중지되었다.
이 무렵 중공군은 전방 부대의 교대를 위해 전략적인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2월 21일 유엔군의 킬러작전이 개시되었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횡성군 강림-안흥-봉화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안흥까지 진출한 후 봉화산을 탈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일까지 수류탄과 총검이 난무하는 혈전을 벌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봉화산을 빼앗지 못하고 정선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신병이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3월 3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7면-1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ㄷ-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