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준(朴文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01808
  • 전몰일자 : 19500827

공훈사항

박문준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일병 역시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박문준 일병과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신주막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 제1사단보다 한발 앞서 유학산에 진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로 인해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방어선 중앙이 돌파되고 다부동이 점령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박문준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방어진지를 미군에게 인계할 준비를 갖추면서 수색정찰을 강화하였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유학산 정면의 적정파악 임무를 띠고 적진으로 진출 중에 27일 미명 상림동의 적 제13사단 사령부를 습격하여 다수의 적을 살상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문준 일병은 1950년 8월 27일 유학산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1-ㅎ-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