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익(朴文翼)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6003
  • 전몰일자 : 19510127

공훈사항

박문익 대위는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서 1921년 6월 2일에 출생하였다. 박 대위는 1950년 1월 14일 육군사관학교 제9기로 임관한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대위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단양, 제천 등 총 8개 군 지역에서 북한의 무장유격대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50년 4월 22일까지 시행되었던 공비토벌작전은 북한유격대와 공비들을 전부 소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북한군 제5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이에 강릉에 주둔해 있던 제8사단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적의 화력에 주문진을 상실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박 대위가 속한 제8사단은 1950년 8월 낙동강까지 후퇴를 하였다. 9월에는 국군의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10월에는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장은 새로운 국면에 봉착되었다. 중공군의 진출에 후퇴를 한 제8사단 제10연대는 국군 6개 사단이 가평-춘천-인제 축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중공군 제42·제66군과 북한군 제2·제5군단이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8사단 10연대는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토산에 도착한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하여 3일 간의 휴식을 마치고 1950년 12월 9일에 토산을 출발하였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북한군과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직면했다. 제8사단 10연대의 정면으로 중공군 제66군 소속 제196·제197·제198사단이 진격해오자 제8사단 10연대는 당시의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박 대위는 1951년 1월 27일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서 철수 작전을 엄호하던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익 대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7판-3면-2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ㅋ-09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