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양(朴文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12657
  • 전몰일자 : 19530708

공훈사항

박문양 일등중사는 1925년 4월 4일에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38도선 상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5월 4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6월 중순에 제2사단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문양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화천-철원-김화를 거쳐 적근산-육단리까지 진격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사단은 공세적인 행동으로 1951년 10월 13일부터 21일가지 금성-금화 진격전으로 금성 서남쪽 직목동까지 진출했다. 이후 다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사단은 1952년 3월 2일부로 사창리 일대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으로 전투력 향상에 매진했고, 6월 30일부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며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박문양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후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11월 25일까지 수차례 있었고, 결국은 사단이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박문양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1953년 여름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공산군은 접촉선상의 주요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공세를 감행했다. 중공군 제73사단 주력이 6월 29일 밤에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공격했다. 당시 제32연대가 방어하고 있었는데, 적에게 돌파를 허용했다. 이에 제17연대는 6월 30일에 화살머리고지(281고지)에 역습을 실시하여 진지를 회복하고 7월 1일까지 유지했다. 전투는 매우 처절하여 피아간에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후 연대는 방어진지를 제32연대에 인계하고 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했다. 이후 중공군은 7월 6일 제2차 공격을 감행하여 화살고지를 탈취하자, 제17연대가 다시 역습하여 11일까지 5일간의 격전 끝에 고지를 탈취했다. 그는 7월 8일 전투에서 소대선임하사로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양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649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ㄱ-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