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식(박문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102122
  • 전몰일자 : 19510303

공훈사항

박문식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50년 5월 1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다. 이후 연대는 동해안 축선의 영해, 영덕, 장사동, 포항, 형산강 변 일대에서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9월 30일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원산 외곽선 경계 후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다가 9일 흥원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사령부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진지가 돌파당하면서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18일까지 횡성의 섬강-원주-제천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며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2월 21일 유엔군의 킬러작전이 개시되었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횡성군 강림-안흥-봉화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안흥까지 진출한 후 봉화산을 탈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일까지 수류탄과 총검이 난무하는 혈전을 벌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봉화산을 빼앗지 못하고 정선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3월 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면-690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ㅈ-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