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식(朴文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393
  • 전몰일자 : 19500801

공훈사항

박문식 일병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7월 중순 전북지역에서 신병 모집을 하던 제7사단 예하 제3연대에 입대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6일부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전북편성관구사령부 예하 제3연대가 제1교육대로 개칭되어 전주에서 부산으로 이동하여 경남편성관구사령부 통제를 받게 되었다.
박문식 일병이 입대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고 있었으나, 전력의 차이와 초전에 빼앗긴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해 계속 밀리고 있었다. 제7사단은 민부대로 개칭되어 전라도 지역의 군소부대들을 규합하여 지연전을 펼치고 있었다. 7월 하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여 소백산맥 선에서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이에 고무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이는 부산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부산에는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었고, 유엔군 병력과 물자들이 하역, 집결되고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경남편성관구사령부는 교육 중인 신병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활동에 대응했다. 8월 1일 부산 시내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박 일병은 기동타격대에 편성되어 대원들과 함께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박문식 일병은 적 게릴라를 찾아 앞장서서 수색을 하다 적들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080-ㅌ-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