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수(朴文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902843
  • 전몰일자 : 19510401

공훈사항

박문수 일등중사는 경기도 화성군 마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5월 17일 제2여단 제18연대에 입대했다. 연대는 1949년 8월 10일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박 일등중사는 동년 6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황해도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8연대는 덕정 일대에 투입되었고, 6월 29부터 7월 4일까지 한강방어선의 김포비행장-영등포-안양 일대에서 적 제6사단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5일 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남일 일대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연대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 투입되어 적을 격퇴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23일부터 적을 추격했고,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강원도 간성-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후 원산(10일), 함흥(17일) 청진(25일) 차례로 점령하고,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중공군의 참전으로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평창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1951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영주 남대리 부근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격멸했다.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2월 21일 시작된 유엔군의 킬러작전 때, 연대는 봉화산을 탈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일까지 혈전을 벌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연대는 하진부리 일대에서 진격을 하였고, 적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4월 1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수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876 국)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23묘역-3판-775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ㅍ-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